(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세계 D램 업체들의 합종연횡과 후발업체의 퇴출을 동반하는 질서재편 가능성에 주목하는 업계 보고서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는 D램 주력 제품의 가격이 1달러에도 못미치는 바닥권을 헤매고 있는 데다 각 D램 업체 진영 간의 '치킨 게임'(chicken game. 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고개를 들고 있는 흐름이어서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1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리만브라더스는 이달 4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1990년대 20여개 D램 업체가 있었으나 2000년대 초반 10여개로 줄었고, 2005년 이후 5개 그룹으로 재편됐다"면서 "2009년 이후에는 5개 그룹이 업체간 합병, 제휴 또는 퇴출 등을 통해 3개 그룹으로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보고서 언급대로 현재 D램 업계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 하이닉스-프로모스 진영 ▲ 엘피다-파워칩 진영 ▲ 키몬다-난야-이노테라 진영 ▲ 마이크론 등 5개 그룹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결국 이들 5개 그룹이 치킨 게임 등을 겪으면서 합종연횡을 통해 3개 그룹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골드만삭스는 업계의 이런 변화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담은 보고서를 내고 장차 다가올 D램 업계의 글로벌 빅뱅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 8일 나온 골드만삭스 보고서는 D램 업체들의 작년 4.4분기 부진한 실적과 이에 맞물린 재무적 어려움, 그리고 트렌치 진영의 기술적 어려움 등으로 업계 재편(reorganization)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키몬다-난야, 하이닉스-프로모스 제휴관계가 불안정(unstable)한데 (이런 제휴관계) 재편 가능성은 D램 수급 상황에 따라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트렌치(trench)는 웨이퍼 아래를 파서 막을 쌓는 회로 구현의 기술적 방식으로, 삼성전자나 하이닉스가 택하고 있는 스택(stack. 웨이퍼 위로 막을 쌓아올리는 방식)과 달리 미세회로 공정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트렌치는 키몬다 진영이 주로 채택하고 있다.
BNP파리바는 전날 보고서에서 "설계 구조상의 한계로 트렌치 진영은 60나노 공정 이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키몬다 등 트렌치 진영은 스택 진영에서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 일각에서는 마이크론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골드만삭스는 나아가 프로모스는 하이닉스의 기술적 지원 없이는 D램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하이닉스-프로모스 진영의 제휴관계의 진전 방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시했다.
또한 엘피다에 대해 파워칩과 제휴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다른 D램 업체와도 느슨한 형태의 제휴를 병행하는 등 다른 진로를 모색할 가능성도 함께 거론했다.
국내의 동부증권도 보고서에서 "프로모스는 하이닉스로부터 80나노 공정기술을 이전받았으나 정치적 문제로 66나노 기술 이전을 제한받고 있다"면서 "따라서 향후 프로모스는 엘피다 또는 마이크론을 새로운 파트너로 고려할 수 있다"고 점쳤다. 다만 "프로모스는 하이닉스와의 기존 계약조건 때문에 이탈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동부증권 보고서는 이와 함께 "기술, 설비투자 경쟁에서 키몬다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로, 대주주인 인피니온 역시 사실상 메모리 사업에서 손을 떼는 분위기"라며 "(이 경우) 난야가 마이크론 같은 스택 진영과 새로운 동맹관계를 맺을 경우 키몬다의 기반이 없어진다"고 분석했다.
동부증권 보고서는 특히 "D램 산업 구조조정 역사에서 보듯 극심한 공급과잉 시기에는 평균 4-5개사의 공급자 퇴출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신공정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적 측면에서 많은 후발업체들이 상위 몇개사와 연합을 형성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결속력이 낮은 키몬다 진영과 시장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는 마이크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구도변화가 예상된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보고서가 담은 내용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로 업계에서도 그동안 회자돼온 것들"이라며 ""이런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는 것 자체가 업계의 질서재편 움직임에 주목해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촌평했다.
